-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의 부장으로 재직 중인 김모(45)씨는 사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아 '불패 신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서울 강남에 한 때 호가가 9억원까지 올랐던 35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그러나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치켜세워줄 때 겉으로는 가볍게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이 쏟아질 지경이다.
사실은 4년 전 은행에서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한 이후 빚이 갈수록 늘어나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 불어나는 사교육비 잦아지는 부부싸움
은행에 매달 내야 하는 대출이자도 이자지만 김 부장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매달 27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사교육비다.
"애 하나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 네 가지는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동생의 희생"
전국에서 장바구니 물가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아줌마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이다.
아빠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사교육비를 충당하지 못하니 할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며 옛날 얘기하는 아빠는 자녀 교육에 걸림돌만 된다는 뜻이다.
또 애 두 명을 모두 대학에 보내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드니 동생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첫째를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김 부장이 "우리 처지에 과외비를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낼 때마다 부인은 "자식 교육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하지 말라"고 맞받아친다.
강남의 상류층 집안 학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과목당 2명의 과외교사들이 집으로 찾아오며 과외교사 1명당 월평균 60만∼7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일부 부유층의 경우 과목당 적게는 100만원, 많으면 몇 백만원짜리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학원은 싼 편이다.
유명 학원들이 몰려 있는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비는 초등학생의 경우 과목당 평균 25만원, 중학생 30만원, 고등학생은 40만원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도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김 부장 입장에서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렇게 사교육비를 많이 들여도 자식들의 명문대학 진학이 보장되지 않으며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 부장은 "사교육비의 부담이 너무 커 한국을 떠나 이민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동료들과 회식을 하게 되면 정부나 정치인들을 원망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할아버지가 부자 아니면 강남 살아도 하류층"
남들 보기에 고액 소득자로 보이는 김 부장은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해본 지가 오래됐다.
왜냐하면 사교육비와 은행 대출이자는 물론 월평균 30만원 하는 아파트 관리비, 각종 보험료 30만원, 자동차 유지비 60만원, 각종 세금, 경조사비, 반찬비 등을 내고 나면 매달 평균 100만∼200만원의 빚이 쌓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값이 오르면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은행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거의 동이 나고 있다.
김 부장은 얼마 전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요즘 밤잠을 자지 못한다.
대출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특히 아파트 값이 본격적인 하락국면에 들어가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오싹하기까지 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간부로 올라섰지만 김 부장은 또다시 하류층으로 내몰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강남에서 상류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자여야 된다. 시댁이나 친정이 부자가 아니면 강남에 아파트가 있더라도 하류층이다."
어렵사리 중산층에 진입한 사람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소수의 상류층과 다수의 하류층으로 나눠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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