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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경제산업부 차장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 류현진의 LA다저스와 함께, 특히 LG트윈스의 부활이 화제다. 5월부터 슬금슬금 승수를 올리더니 급기야 20일에는 1995년 이래 처음 정규리그 하반기 1위를 차지했다. 별로 야구에 관심이 없던 내게도 그날 페친(페이스북 친구) 2명으로부터 ‘18년 동안 짝사랑하던 여자가 드디어 내 품에 쏙 안긴 기분’ ‘눈물이 핑 돌았어요’라며 감격에 겨워하는 게시물이 전달돼 왔다. 만년 하위팀을 벗어나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라이온즈마저 넘보는 이 유광 점퍼팀에 스포츠 기자들은 ‘진격의 LG’란 애칭을 붙여주었다.
“창사 이래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연구·개발(R&D) 투자는 단 한 번도 줄여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 나아졌다면 그 덕이 아닐까요?”
얼마 전 만난 LG 관계자에게 ‘스마트폰 G 시리즈가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네자 돌아온 대답이다. 정말? 그룹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영업보고서를 보면 국내 R&D 투자실적은 2009년 1조6015억 원에서 2010년 1조6906억 원, 2011년 2조46억 원, 2012년 2조2067억 원으로 매년 1000억~3000억 원씩 늘어났다. 또 다른 주력사 LG화학의 R&D 투자도 2009년 2237억 원에서 2012년 3865억 원으로 증액 일변도였다. R&D 투자는 박근혜정부의 숙원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된다.
LG전자의 국내 R&D 인력은 2009년 1만2500여 명에서 2012년 1만7000명까지 늘었다. LG화학의 국내 인력 중 R&D 종사자 비율은 20%에 육박한다. 첨단장비뿐 아니라 고급두뇌에 베팅한 거다. 그래서 LG전자의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은 6.3%에 달한다. 100원어치를 팔면 6원을 기술 연마하는 데 들인 셈이다. 올 상반기 LG전자보다 22배의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의 R&D 비율도 6.4% 정도다. LG전자가 삼성전자와 애플에 뒤졌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추격의 실마리를 잡고 가전명가 부활을 꿈꾸는 건 이런 저변이 깔려있어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LG화학 역시 미국 배터리 공장을 재가동하며 전기자동차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는 소재와 부품이다. 독일 등 유럽 강국들이 먼저 갔던 길이고, 이웃 일본에 아직 부러움의 시선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퍼붓는 중소기업, 히든 챔피언과 함께 국가대표팀을 꾸려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우승팀을 잡아야 할 의무가 우리 대기업엔 있다. 해외출장을 가면 ‘SAMSUNG’과 ‘LG’의 로고가 고향집 문패처럼 느껴진다. 가끔 아옹다옹하는 일도 있지만 삼성도 동네 라이벌 LG의 부활을 속으로 반겨주리라 믿는다. 갤럭시 스마트폰이 영업이익의 70%를 벌어들이는 ‘장사 쏠림’뿐 아니라, 나홀로 잘나가는 ‘시선 쏠림’ 해소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양대 명문의 멋진 플레이에 환호하고 싶은 팬들의 기대는 커져가고 있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이런 어록을 남겼다. “남이 안 하는 일 가운데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국민경제에 유익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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