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는 건 현재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당연한 우주의 섭리는 자주 인간을 오만하거나 무료하게 만든다. 구태여 기다리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것이므로 안달할 필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의 필 코스너(빌 머레이)는 삐딱한 불평꾼이자 잘나가는 기상 캐스터다.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직업이다. 언젠가부터 내일은 그에게 두근거리는 미지의 물음표가 아니라 직업적 대상이 되었다. 취재를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 펑추니아로 출장을 떠난 날 역시 필은 종일 투덜거린다. 예고치 않은 폭설로 고립되어 작은 호텔에서 잠이 들면서 그는 어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그가 눈을 뜬 시각은 새 아침 여섯 시였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라디오 방송의 디제이는 어제 들었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멘트로 인사를 하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다 어제와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행동을 한다. 당연히 와 있어야만 할 '내일'이 오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지나가야 마땅한 오늘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는다. 필은 오늘만이 무한 반복되는 이상한 나라에 갇혀 버렸다.
"내일이 없다면 어떨 것 같아?" "인과응보(因果應報)도 없겠지." 제가 한 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음주운전도 은행털이도 할 수 있지만 감옥 대신 안전한 침대에서 일어나면 책임감 대신 무기력함이 덮쳐온다. 다음 순서는 자살 시도다. 하지만 역시 저승 대신 침대다. 죽음에 이르는 길마저 차단당한 필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다. 노숙자에게 봉사하고 얼음 조각을 배우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피아노 레슨도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눈을 뜬 아침, 또다시 6시에 멈춰 서 있나 싶던 시계가 6시 1분으로 째깍 넘어간다. 2013년 새해, 필의 마지막 말을 오래 곱씹어 본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아요? 오늘은 내일이에요."
원문기사: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6/20130106013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