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도 탐내는 '오바마 7대 성공 전략'




+ 최대 고객 모은 'CEO 오바마'
+ 새로운 고객층 창조하며 경쟁없는 블루오션 개척
+ 브랜드도 치밀하게 계산

"오바마는 브랜드가 원하는 3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 새롭고(New),
  - 차별화(Different)됐고,
  - 매력적(Attractive)이다."
(글로벌 광고회사 DDB월드의 키스 라인하트·Reinhard 회장)

버락 오바마(Obama)의 성공을 놓고 경영학 연구자들이 바빠졌다.
그의 대선 승리는 MBA(경영학 석사) 강좌에 오를 만한
케이스 스터디 감이라고 경영학계에선 입을 모은다.
그는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하는 블루오션(Blue Ocean·경쟁이 없는 신규시장)을 추구했으며,

치밀하게 계산된 브랜드 전략을 구사해 미국 대선 사상 최대 고객(6325만 표)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미국 경영전문 월간지 "패스트컴퍼니(Fastcompany)"는
- "온라인으로 지지자를 모았다는 점에서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Page)와 비슷하고,
- 새로운 정치 수요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Schultz)를 섞어 놓은 사람"

   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어떻게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유권자를 자신의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패스트컴퍼니와 경제전문 방송 'MSNBC' 등
미국 언론의 분석을 종합해 "CEO 오바마"의 전략을 들여다봤다.





1.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지난 1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첫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당시까지 미국 언론의 대세론은 힐러리 클린턴에 몰려 있었다.

기존 방식으론 승리의 가능성이 없다고 느낀 오바마는 30대 이하 젊은 당원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투표당일 청바지를 입고 젊은이들과 농구를 하기도 했다.

결과는? 젊은 층의 참가는 이전 선거보다 4배가 늘었고, 코커스에 참가한 당원의 20%가 30대 이하였다.

힐러리 대세론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2. 고객의 친구가 되라

  삼성전자 제품을 산 뒤,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감사 메일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오바마는 이 점을 노렸다.

오바마 선거캠프에서 유권자에게 보낸 모금(募金) 권유 이메일은 '오바마@' 혹은

부인인 '미셸 오바마@'로 시작됐다.

'선거대책본부@'나 '민주당@'으로 보냈으면 지워졌을 메일도 사람들이 한 번 더 읽도록 만든 것이다.





3. 철저한 계획과 단단한 팀워크

  오바마는 철저하게 2007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세운 계획대로 움직였다.

MSNBC는 "이라크 철군 시한에 대한 언급을 빼고는 이때 세워진 계획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벌써 그의 참모들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할 일에 대한 계획 세우기에 들어갔다.

그의 팀은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했다.

바이든 부통령 지명도 발표 전까지 어떤 언론도 미리 보도하지 못했다.





4. 핵심 고객의 충성심

  오바마 성공은 입 소문을 내주는 '핵심고객'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사는 한 지지자는 오바마의 유세 일정과 지역 내 선거 캠페인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휴대전화 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온라인에서 막강한 파워를 발휘했다.

힐러리나 매케인 등 다른 후보들의 온라인 콘텐츠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인데 반해

오바마는 지지자들이 만들어 올렸다.





5.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

  오바마의 대선 로고는 디자인의 승리다.

다른 후보들이 자신의 이름을 강조한 밋밋한 로고를 사용한 반면,

오바마는 자신 이름의 첫 글자인 "O"를 태양으로 형상화하고 푸른색 배경을 넣어

미래로 달려가는 이미지를 상징화했다.

그는 이 로고로 변화와 희망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극대화시켰다.

지난 8월 오바마의 민주당의 대선 후보 지명 전당대회는 오바마 브랜드의 결정체였다.

장소도 체육관을 벗어나 역동적인 미식축구 경기장을 선택했고,

대회장에서 함께 부른 노래도 로큰롤인 '더 라이징(The Rising·떠오름)' 이었다.





6. 일단 결정하면 밀고 나가라

  부통령 후보를 상대적으로 무명인 바이든으로 결정한 것은

오바마가 가장 안전한 선택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륜이 정치 신인인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했고,

현실적으로는 공화당 우세지역인 펜실베이니아 태생인 바이든의 영입을 통해

선거의 반전을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 열풍이 불었지만 오바마는 당초 선택을 고수했다.

오바마의 선거참모인 데이비드 플루페(Plouffe)는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10가지의 원칙을 세운 뒤 완벽한 결과를 찾는 것보다 낫다"며
"이것이 오바마 방식(Obama way)" 이라고 말했다





7. 집요해져라

  네브래스카주는 선거인단이 5명밖에 없지만,

여론 조사에서 열세지역으로 나오자 마지막까지 유세를 위해 찾아갔다.

결국 5명의 선거인단은 매케인에게 돌아갔지만 끝까지 포기 않는

오바마의 집요함이 유권자들 마음을 움직였다.




                           - 조선일보 조의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