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달성체험기]]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 (1편)  

http://cafe.daum.net/10in10/9SuZ/28989  

어제 시간을 내서 제가 소유한 부동산과 현금 그리고 간접펀드등 저의 자산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자산이 20억이 조금 넘었더군요.


10원짜리 하나부터 이 자산을 모을때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제가 텐인텐에 회원가입 했던 날을 확인해보니 2002년 4월3일입니다.

카페에 가입했을 때 저는 중고 티코를 타고 있었고,

그것도 서울 장안평 중고시장에서 깍고 깍아서 230만원에 장만했던 것입니다.



카페에 가입하고 횟수로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저는 올해 35세가 되었습니다.

(아직 젊죠? 총각입니다.^^)



직업은 제 글을 읽다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제 기억으론 카페에 가입했을 때 저의 자산이 4천만원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텐인텐에서 훌륭한 전문가님들의 글을 읽어왔고 또한 흥미진진한 금주의 베스트 글도 애독했습니다.

글 중에서 진솔한 삶을 얘기한 글도 있었고, 투자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던 글들도 많았기에

지루한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죠.



전 솔직히 텐인텐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재테크에 관심만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보통사람에겐 정말 좋은 카페인 것은 분명합니다.

  

카페에서 얻기만 했던 제가 부족했던 삶이지만 짧은 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저보다 앞서 있는 사람에게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분도 자극을 받아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며 저의 과거를 공개합니다.





<과거내용은 편의상 문체가 바뀝니다.>


지방대학교 4학년,,,,


2000년 가을 93학번인 내가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4학년이 될 무렵이다.

이제는 돈을 벌 수 있는 사회에 나갈 때가 다가왔지만

난 기대감보다 더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갖췄는지, 현재 위치는 어느 정도 되는지

또 무엇을 더 갖춰야만 취업의 문을 열 수 있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저 나보다 먼저 취업문을 여는데 성공을 했던 이들이 준비했던 것처럼 토익공부와

컴퓨터 활용능력을 익히고 면접을 위한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며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남들을 따라서 어딘 줄 모르는 나의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나를 가꾸기에 바빴다.


학점관리도 했고 공대학과가 준비해야 하는 토익의 기준도 800점을 넘게 받았기에

내심 약간의 기대는 갖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다.



이력서를 적으면서 아침에 깔끔한 양복을 입고 씩씩하게 빌딩 숲 사이를 걸어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냉정한 현실,,,,




내 자신을 너무 몰랐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약간의 기대를 갖고 취업을 준비했던 나는 면접을 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20곳이 넘는 곳에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1곳만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사회는 냉정했다.

사회는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 위주로 그리고 나보다 더 뛰어난 인재들 순으로 그들을 받아 들였다.



고등학교에서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으면 본인의 전국 석차를 확인할 수 있다.

취업을 하기 전 전국성적표가 있다면 나는 도대체 몇 등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바닥순위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조차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듯 했다.

나의 이력서는 사무실 한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나의 존재가 이렇게 미약하고 작다는 것을 처참하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뛰어난 다른 이들을 다 데려간 후에 나에게 손짓하는 직장은 오히려 나의 성에 차지가 않았다.


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서,,,,


취업의 쓴 고배를 마신 나는 어리석게도 취업준비가 부족했다고 느끼게 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졸업생들과 똑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처럼,,,


고작 생각을 한 것이 나의 영어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였다.

영어를 조금 더 잘하면 내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선 언어연수를 떠나 영어회화를 능숙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도 이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한심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대학생인 내가 너무도 어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틀에서 작은 생각을 하는 대학생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취업,,, 취업,,, 그것으로 인해 맞춰지는 내 삶이었다.  

대학생들의 공무원 시험준비? 대학원 진학? 언어연수?

현재 내 눈엔 취업이 제 때에 안 되어서 잠시 피신하는 대부분 대학생들의 피난처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다.

취업이 제대로 되지 않자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외국에서 6개월 동안 공부시켜달라고 말씀드렸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 2년에 공부할 양을 6개월 만에 끝내고 오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 큰 못난 자식이었다.


집안형편상 언어연수에 필요한 자금은 내 스스로 마련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철없는 자식의 말에 아니 공부를 마무리 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많이 가슴 아파 하셨을 것이다.


지방으로 떠나다.


2001년 2월 취업의 쓴 고배를 마신 나는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싫었다.

아니 사실 창피해서 대학원에 미리 진학한 친구에게 졸업장을 대신 받아서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언어연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지방으로 단지 급여가 많은 곳을 찾아서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울산이다.

빨리 외국에 나갈 돈을 벌어서 빨리 언어연수과정을 마쳐야 하고 빨리 이력서를 작성해서 빨리 취직을 해야 한다.

  



‘빨리 빨리’가 머릿속에 맴 돌았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했다.



내가 찾은 높은 보수의 알바는 바로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는 것이였다.

일은 힘들지만 초봉이 200만원정도 되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대학졸업생이 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다.

(사실 내가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의 대부분은 이 월급보다 급여가 적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이지만 열심히 일을 했고 나이트클럽에서 업무를 마치는

새벽5시면 자지 않고 곧 바로 영어회화학원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 새벽회화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업무시간에 틈이 나는 대로 영자신문을 보고 숙소에서도

자막을 가린 채 한가지 영화만을 반복해서 보며 언어연수 준비를 했다.


연수자금을 빨리 모아야 했기에 몇백원 밖에 안되는 음료수조차 꾹 참으며 냉수를 들이키고

천원짜리 김밥을 자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일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1천만원을 모으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1천만원을 모았을 때가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순간이고 정말 큰 돈으로 느껴졌었다.


이렇게 큰 돈을 모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돈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돈이 이뻤다.






[[10억달성체험기]]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2편)

10년 스케치....


목표했던 1천만원을 모았으니 지방의 내려온 나의 목적인 언어연수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언어연수계획을 세우면서 나의 미래 10년에 대해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8세 후반에 언어연수를 다녀와서 29세에 취직을 하고 30세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직장에서 연봉을 얼마를 받고 얼마를 저축할 것인지 계산기를 두들겨보았다.

빠듯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35세정도 되면 대출을 안고 집을 장만하고, 현실에 맞게 가상의 월급으로 나의 인생의 노선을 정리해보았다.



10년 계획을 그려놓고 보니 내 인생은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었다.

계획을 세우기 전에 기대를 했지만 직장에 취직한다고 해도

아껴 쓰고 저축을 한다고 해도 초라하고 쉼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결혼을 하면 애기도 낳고 교육시켜야 하고 집안도 돌봐야 하는데

나 혼자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누군지 모르는 나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그 고생을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한 숨만 나왔다.

현실이 이러하니 직장인은 쳇바퀴 인생만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향후 10년에 대해 계획해보니 언어연수가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너가 원하는 10년 후 모습은 뭐야?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뭐야?

자꾸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의 꿈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안정된 평생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돈에 맞추어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며 살고 싶다.


그러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나의 꿈이다.

하지만 나이 행복의 전제조건은 일단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삶의 여유가,,,

  



그러나 내가 그린 10년의 그림은 내 머릿속의 상상을 담아낼 수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꿈밖에 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가?


이 날 이후로 언어연수를 위해 부지런하고 근면했던 나는 멍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길은 여러개 있다...


대학졸업 후 취업을 위해 지방에 내려오게 된 ‘언어연수’라는 나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였다.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정체성을 잃은 멍한 사람처럼 앉아있고 이젠 영자신문도 보지 않게 되고,

영어회화학원도 추가등록하지 않고 자막을 가리고 비디오를 보는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 사람은 목표가 없을 때엔 생활에 힘과 활력이 사라진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확실한 목표가 있을 때엔 웃으면서 일할 수 있고 고통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내겐 제일 중요한 목표가 희미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 형님이 숙소에 오셨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나의 하소연을 한참 듣기만 하던 형님이 한마디를 하신다.


‘너 정말 성공하고 싶구나? 그렇지?’

‘네??성공이요?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계획으론 이것도 저것 아무것도 아니니 사는게 너무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몇 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모아. 그리고 사업을 해.

또 돈이 모아지는 동안엔 돈을 벌 수 있는 공부를 해. 왜 월급으로만 너의 인생을 살려고 하냐’




‘돈이 되는 공부요?’



취중이었지만 형님의 말 한마디가 미로 속에 헤매고 있던 나를 꺼내준 것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월급으로만 내 인생을 스케치 한 것이다.

그랬기에 내 머릿속엔 단순히 아껴야 잘 산다는 ‘절약정신’만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신에게 한마디 던졌다.

넌 지금까지 정말 바보였어...

인생스케치의 재수정,,,,



그날 이후 나는 내 인생의 스케치를 전면 수정하였다.

대학 후 오직 취업을 위해 해 왔던 영어공부를 완전 접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돈이 되는 공부’, ‘돈을 벌 수 있는 공부’를 하기로 맘을 먹었다.


고등학교까지 12년의 교육을 받고, 또 4년의 대학교육으로 왠만한 사람이면 16년동안 학생이라는 직업을 갖는다.

그러나 16년을 공부한 대학생이라고 해도 관련된 학과와 따로 경제신문을 구독하여 공부하지 않은

대부분 학생들의 경제지식과 수준을 따진다면 형편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맘은 이렇게 먹었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인터넷으로 재테크와 관련된 카페에 전부 가입을 했다.

그리고 고수를 찾고 재테크에 관련된 글을 읽어 보았다.

아마도 이 당시에 텐인텐에서 제일 열심히 눈팅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경제공부의 첫걸음으로 선택을 했던 것이‘매일경제신문’을 구독하여 매일 정독하는 것이였다.

처음엔 용어가 너무 낯설고 광범위해서 힘들었지만 점점 용어도 익숙해졌다.

신문의 내용을 다 이해하기까지 3시간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단축되고 나에게 필요한 기사만을 골라서 읽을 수 있었다.








신문과 병행하여 나는 바닥수준인 나의 경제지식을 늘리기 위해

‘주식’, ‘부동산’, ‘부자’, ‘돈’이 들어간 제목의 책을 보이는 대로 주문하여 나의 이론을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책과 신문등 나의 경제지식을 늘리는 것 말고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2년 동안 이러한 생활이 반복이 되고 경제신문을 오랫도록 구독하니 신기하게도 전체시장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신문기사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신문기사를 쓰는 기자도 경제부분에서 아마추어가 있다.

아마추어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그대로 싣는 경우도 있고 전문가라고 해서 정답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을 펼쳐 놓고 비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신문을 제대로 보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책을 사서 볼 때도 가끔씩 책쟁이(?)한테 속아서 샀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체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면 투자에서 걸음마를 마친 것이다.

또한 시장의 흐름을 감지 할 능력이 생기면 간접투자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2002년부터 1,000만원, 2,000만원정도의 목돈을 ELS에 투자하여 14%-16%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다.

LG증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ELS상품부터 가입하여 2004년까지 간접펀드로 조그만 수익을 꾸준하게 올렸다.







내가 책을 살 때 지출된 비용과 신문 가격 전부를 합한다고 해도

간접펀드의 수익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경제공부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것은

목돈을 모으고 불리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간접펀드에는 알뜰하게 모은 내 돈이 투자가 되었기에 경제공부를 하고

책을 사서 구독할 때 더욱 집중이 되었는지 모른다.

(원래 고스톱과 카드도 돈을 걸어 놓고 치면 눈이 번쩍 띄이는 법이다. )


이 기간에 저축은행 후순위채권도 매입하여 꾸준하게 9.2%의 이자를 받는 상품도 가입하고

여러 가지 작은 투자를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간접펀드의 수익이 작게만 느껴졌다.

왠지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기엔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내 자신이 자산을 너무 안정성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억달성체험기]]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3편)  

애벌레가 탈피하는 순간,,,!!



이젠 직접투자를 하고 싶었다.

솔직히 표현하면 더 높은 투자수익을 얻고 싶었다.


나는 악착같이 돈은 모았지만 막상 투자를 할 땐 소심쟁이였다.


사람들은 돈 앞에서 겁쟁이가 되고 소심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여윳돈이 아닌 힘든 노동을 통해 한푼 한푼 자신이 모은 목돈으로 투자를 할 때는 평소보다 더 긴장을 하고

조바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실패하진 않았지만 나의 목돈을 여러 개의 간접펀드에 넣었을 때도 주식을 직접매입했을 경우에도

심리적으로 느긋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개별종목의 주가가 기준치에 올라 수익이 확정되기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내가 보유한 종목에 관한 ‘경제신문’의 자극적이고 비관적인 기사에 깜짝 놀라고 당황했을 때도 있었다.


‘ 나는 절대 돈을 잃으면 안 돼,,,!! 절대,,,!! 절대로,,,!! ’


투자를 하기 전에 항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안정성’과 ‘회전율’이었다.


나는 절대 돈이 새지 않는 금고를 갖고 싶었다.


그 다음이 수익률이었다.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수익률이 더 높은 매력적인 펀드가 출시되었다는 신문의 광고를 보고도

내가 투자에 자신이 없는 경우엔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보유했다.




모르는 경우엔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투자의 한 방법이다.

돈을 잃는 것보다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은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돈이 되는’, ‘돈을 벌 수 있는’ 공부를 했다.

주식, 부동산, 경매, 그리고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언제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돈이 흘러가는 흐름이 보일 때까지,,,




그리고 그 돈의 물줄기를 내게로 돌릴 수 있을 때까지,,,!!!!


백 권의 책보다 나보다 앞선 한 사람이 더 절실했다,,,!!

조그만 투자로 꾸준하게 수익을 올렸고 계속해서 공부를 했기에 나의 경제지식은 점점 향상되는 것 같았다.




나와 일하는 동료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나는 나보다 먼저 제대로 된 회사에 입사한 동기들 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맘을 먹었다.

나이트클럽이라는 폐쇄된 곳에서 일을 했기에 외로웠지만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한 시기다. 진작 이렇게 공부를 했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가서 수월하게 취업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나도 괜찮은 직장에 다니면서 투자를 하고 있고 옆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동기들을 지켜보았다면

동화속의 토끼와 거북이에서 앞서 달려가던 토끼가 뒤에 쳐져있는 거북이를 보고 긴장을 놓아버린 것처럼

나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은 남과 비교를 하며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다. 똑같은 10억을 갖은 자라도 아파트 한 채 가격에도 못 미치는 강남에 사는 사람은 빈곤을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은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남의 10억 소유자는 주변에 그 보다 더 가진 자들이 많기에 지방의 10억 부자보다 더 악착같이 살 것이다.)



하지만 경제공부를 계속 한다고 해서 나의 실력이 꾸준히 향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테크와 투자에 관한 공부를 하다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온다.

막상 처음 시작했을 땐 독한마음으로 경제와 돈에 관련된 서적들을 섭렵하면 돈의 흐름을 낚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책을 읽고도 고작 이정도의 투자 밖에 못하는 것인가?

내가 머리가 나빠서 많은 책이 주는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번을 읽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은 3번을 보았다.


그래도 답답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만 효과적으로 실력이 향상되는지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에겐 이론 보다 냉혹한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실전 기술이 필요했다.




세상의 돈을 쉽게 주무르는 사람이 있다면 달려가서 만나고 싶었다.

인터넷이든 책이든 나보다 뛰어난 고수를 접하게 되면 그에게 제발 나의 스승이 되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그의 수락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보다 앞선 이를 만나면 나의 간절함은 그냥 해결이 될 것만 같았다.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가 밑바닥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어 안간힘을 하다가 사채시장의 거물을 찾아갔던 것처럼,,,,!!



나는 빨리 성공을 하고 싶었다.


아서라,,,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은,,,,!!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아무런 체계도 없이 미련스럽게 공부를 했다.



욕심 많은 원숭이가 커다란 밥상을 보고 제 볼이 터질 때까지 입안에 먹을 것을 쑤셔 넣는 것처럼

부동산과 주식, 채권, 경매등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제목의 책들을 읽기만 하면

어느 날 번쩍 투자에 대한 눈이 띄일 것이라 생각하고 무작위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이런 방법으론 큰 돈을 벌기 힘들었고 벌 수도 없었다.



정말 부자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된 투자를 하고 싶다면 실전에서 제대로 써 먹을수 있는 나만의 주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전체시장의 흐름을 감지할 정도의 능력이 생겼다면 그 이후엔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내가 많은 책을 읽고 투자를 하여 최종적으로 얻은 투자의 원칙은 단순한 한가지다.




투자의 핵심은 시세보다 싼 것에만 투자를 하면 되는 것이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싼 것만 골라서 사면 되는 것이다.

사고 나서 시세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막연한 기대감에 투자를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가끔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싼 것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나 싸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글은 쉽게 표현을 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저평가 투자대상을 찾아내기 위해선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고수가 되고 푼돈이 아닌 큰 돈을 벌기 위해선 한 우물을 깊게 파야만 한다.

오직 한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단지 몇 권을 읽고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녹녹치 않다.


그러나 한가지에 정통하여 어느 단계에 올라서면 투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쉽다.



[[10억달성체험기]]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4편)  

내가 선택한 게임,,,!!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중간생략을 해야겠다.

대학졸업 후 긴 시간을 단 시간에 글로써 정리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써야겠지. 벌써부터 마무리가 부담이 된다.)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와 간접투자로 4년간 1억2천만원의 종자돈을 마련했다.

(투자의 시작은 종자돈(seed money)을 모으는 것이다.)


나에겐 이젠 재테크 개념보다 따로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 투자에서 큰 수익이 필요했다.




28세에서 31세까지 4년의 시간을 나이트클럽에서 근무하며 나이를 먹은 내가  

또 다시 사회에 나와 취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부담이 되었다.




조그만 수익을 거두었던 주식에 대한 미련은 접고 부동산공부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다.

부동산 한 분야만 하더라도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재개발, 뉴타운, 아파트, 상가, 토지, 세법등 부동산 분야별로 공부를 했고 그

리고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나만의 주무기를 만들기 위해 경매공부에 혼신을 다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하며 읽었던 경매 책이 25권이었다.

법률용어도 어색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쉽지 않았기에 구입한 경매 책 25권을 3번씩 읽었다.




책에 형광펜을 칠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물음표를 달아두어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궁금증을 해결하곤 하였다.






밤에 일을 해야 하고 휴일이 없는 직업을 갖었기에 경매강좌나 다른 부동산 세미나에 참석을 하고 싶어도 참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밤 생활을 청산해야 할 시간이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완벽한 준비를 하고 싶었다.

곧바로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것은 부딪쳐봐야 알테지,,,!!






세상 밖으로,,,!!

    



31살이 될 무렵 밤(?)생활을 청산하고 햇빛을 보며 일할 수 있는 사회에 다시 나왔다.

매일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술 냄새에 익숙했던 나에겐 모든 것이 어색했다.




사회에 나오면 곧바로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지만

4년이란 긴 시간동안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살았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많았다.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대학졸업 후 지방에 내려갔을 때처럼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내가 아직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창피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부동산에 관련된 일을 시작한다고 말을 하니 걱정된 위로의 말만 할뿐이다.








어쨌든 일에 관해선 새로운 사람 한명 만나는 것부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왠지 남들이 걷지 않았던 길만을 골라서 걷고 있는 듯 했다.








일단 그동안 열심히 일을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2주 동안 머리를 식히며 휴가를 즐겼다.

휴가기간동안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만 할지 구상을 해 보았다.

(글은 휴가라고 표현했지만 밤일을 그만두는 순간 난 다시 무직이었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경매업무 아니면 부동산 투자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여러 곳을 방문하였다.








인터넷에 구인광고와 벼룩시장의 구인란을 보며 실전기술을 배울 곳을 찾아 본 것이다.

나의 목표는 단지 월급으로 맞춰진 인생이 아니었기에 이젠 급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취업을 위해 내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 회사와 컨설팅업체, 그리고 법무사사무실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너무도 단순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부동산과 경매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이였고,

내가 그들을 보고 느낀 것은 나에게 실전기술을 알려줄 수 있는 배움의 초석이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경매당한 세입자에게 우편물을 발송하여 낙찰을 받게 해주는 그런 단순한 작업을 하거나

회사에서 미리 매입을 해둔 토지를 이쁘게 포장하여 고객에게 설명을 하고 토지매입을 권유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공교롭게 이번엔 내가 이력서를 제출했던 곳은 모두 합격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서 부동산과 경매시장에 뛰어 들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 힘들꺼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내가 아무리 경매와

부동산에 관한 책을 수십권을 몇 번씩 읽었다고 해도 실전에 나가보니 생소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지적도를 사서 내가 아는 지역을 하나씩 표시를 해가며 일단 집 주변의 물건부터 입찰을 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첫 시작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끝장이다’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외로웠다.’

‘그냥 혼자서 가는 길이 외로웠다.’








나는 4년동안 밤에 일을 하며 공부를 할 때도 다시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에도 늘 혼자였다.

밤일을 할 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들과 대화가 적은 편이였고 빈 시간엔 책과 사귀었다.








아마 그들도 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악착같이 종자돈을 모으며 공부하는 내 모습이 그들 눈에 곱게 보일리 없었을 것이고,

공감대도 부족하니 그들과 벽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는지 모른다.








가끔은 그저 직장에 출퇴근하면 월급이 나오는 평탄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군대를 제대한 사람이 훈련소 시절 힘들었던 모습을 상상하는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밤 생활이 내겐 소중한 추억이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라면 부담이 많이 된다.







이론에만 치중되어 있던 나의 투자 감각을 실전에 적용시키기 위해 현장답사를 많이 다녔다.

그리고 현장에 가면 꼭 인근부동산에 들러 공인중개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생활은 휴일도 없이 반복되었기에 나의 인맥은 점점 늘어갔다.

그러면서 내가 낙찰 받은 물건도 역시 하나씩 늘어났다.








부동산 매입은 꼭 경매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저평가 된 지역의 물건이 있으면 아니 내가 이 부동산을 사서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면 무조건 매입을 했다.








나의 종자돈이 부동산 투자를 하기엔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므로 부동산 구입시

레버리지(융자, 세입자의 보증금)를 최대한 이용했다.








돈은 노력하는 자에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인생에 기회는 단지 3번 밖에 오지 않는다.

아니 그 3번이 기회인지도 모르고 놓친 후에 땅을 치고 후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주식에서 상한가 종목을 잡고도 작은 수익에 던져버리거나 부동산에서도 자신의 땅과 건물이

재개발지역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조그만 수익에 팔아버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2005년 4월이었다.


2005년 8월에 서울3차뉴타운이 발표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발 빠른 투자자들은 어디가 될지 모르는 곳을

선점하기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부동산 매입을 하러 다니던 시기다.


나도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급매물을 찾던 중이었다.

흑석동에 괜찮은 매물이 나와 있다고 누나에게서 전화연락이 왔다.



‘매물이 몇 개 나왔어?’

‘어,,,매물은 많아. 잠깐 돌아봤는데 4개가 넘어,,,그리고 분위기는 조용해.’




‘매물은 많이 있네. 빌라 대지지분은 몇 평이야? 그리고 평당 가격은?’

‘19평이고,,,,평당 600만원이야.’




‘그럼 내부 상태가 괜찮은 것으로 무조건 하나 계약해줘,,,지금 바로 1,000만원 입금할께.

그리고 중도금은 내일 1,000만원 입금하는 것으로 하고 잔금일은 2달 후로 계약서 작성해줘.’

‘응,,알았어.’




집구경은 하지도 않고 단지 지적도만을 확인하고 곧바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그러나 난 서울에서 이 가격(평당600만원)이면 뉴타운이 지정되지 않더라도 절대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 확신이 있었고

내가 수집했던 인터넷 정보와 재개발 정보는 흑석동이 유망한 3차뉴타운 후보였기에 ‘장고’없이 계약을 체결했다.


나에게 집을 매도했던 주인은 이 집을 최초에 1억1,500만원에 분양받아 10년이 넘도록 이 가격 그대로

집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이다.(이 가격이면 분양당시엔 호화빌라에 속한다.)



나에게 매도를 한 가격도 역시 1억1,500만원이었다.  

2005년 6월이 되자 뉴타운 발표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나고 나와 있던 모든 매물들이 팔리거나 자취를 감췄다.

잔금일이 다가오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집주인과 다른 부동산에서 웃돈을 제시하며 해약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난 이미 중도금을 지불한 상태였으므로 주인과 부동산의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3차뉴타운’ 발표가 나고 내 빌라는 정확하게 뉴타운지역에 포함이 되었다.

시세는 금새 3억이 넘는 금액까지 치솟았다.

세전이지만 순식간에 2억이 넘는 수익이 생겼다.

전세를 안고 매입했고 내가 소유한 아파트에서 융자를 받았기에 실제 현금 투자금액은 부대비용을 포함하여 3,000만원에 불과했다.

이 곳은 서울지하철9호선 개통으로 강남권 진입이 유리해지고 앞으로 좋은 동네로 탈바꿈을 할 것이기에 아직도 보유중이다.

추가부담금을 부담한다면 나는 강남에서 인접한 유망한 지역의 아파트가 1채 생기는 것이다.

나는 잔금을 치르고 단지 2달을 보유했고, 집주인은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유했다.


그런데 이 투자가 나에겐 너무도 큰 수익이지만, 돈으로만 따진다면 집주인에겐 인생의 3번기회 중 1번을 놓친 것일 수 있다.

매물이 많이 나와 있었으므로 자신의 기회를 다른 이에게 빼앗긴 것은 이 주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밥그릇도 빼앗길 수 있다.



(다음주에 마무리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0억달성체험기]]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완결)  

이론과 실전은 달랐다,,,!!

내가 실전투자를 하며 느꼈던 것은 그동안 나를 너무 헷갈리게 했던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명쾌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똑같은 수학강의라고 해도 알기 쉽고 명쾌하게 강의를 하는 사람이 명강사다.

그런데 내가 읽었던 책들은 쉬웠던 부동산 투자를 어렵게 설명해 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투자를 하기 전 본인의 투자원칙은 간단해야 한다.
투자원칙은 쉽고 단순화 해야만 결단력 있는 투자가 가능하다.

당신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은 당신의 투자원칙이 될 수 없고 그런 이론과 전문가들의 전망은
실전투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째, 벌집이론과 부동산주기론등 학문에 가까운 이론들~!!

나도 집 앞의 아파트 한 채를 사며 그동안 많은 부동산 책을 읽었다고 이 큰 공식에 지금이
부동산매입이 맞는 주기인지 맞춰보았던 적이 있다.
주택가격과 수요에 따른 변화를 분석하며 현재 아파트의 가격은 적정한지 또한 벌집모양중에
어느 시기에 해당하는지 나름대로 연습장을 채워가며 고민을 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내가 머리가 나쁜 것인지 나는 도저히 그 이론에 맞춰 투자는 못 해먹겠다.
더 헷갈리기만 한다.
이 이론으로 자신의 책을 포장했던 저자는 과연 이 이론에 맞춰서 자신의 집을 구입하는지 의심스럽다.
솔직히 달려가서 그 저자는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통장을 훔쳐보고 싶다.
자신도 그 큰 이론에 맞춰 부동산 투자를 하라고 하면 아마도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둘째, 신문과 일간지등에 등장하는 부동산 전문가들
매년 초에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부동산에 대한 전망과
상가, 토지, 아파트, 오피스텔중 어느 상품이 유망한지 전망을 내 놓는다.
나는 항상 그들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였다.
그들이 오피스텔에 대해 비관론을 내놓을 때 오히려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도 비관론이 나왔을 때 전세가격이하로 매입한 것이다.
이젠 그들이 오피스텔에 낙관론을 내놓는다.
그런 낙관론이 나오자 오피스텔 투자에 먹을 것이 별로 없다.
낙관론을 내 놓은 전문가 본인도 오피스텔에 투자를 했는지 궁금하다.


셋째, 전국지도를 펼쳐 놓거나 전국도로망을 펼쳐 놓은 사람
내가 살 집을 구하는데 우리나라 전국도로망까지 봐가며 투자를 해야 되는 것인가?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정확히 모르는데 전국지도까지 봐야하나?
정말 부동산 투자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투자자는 투자를 원하는 지역명만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도 그 지역의 호재와 악재는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이 사려고 하는 지역중에서 제일 발달된 지역과 인접지역만 돌아봐도 답이 나온다.

나는 그 저자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샛길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넷째, 일본과 미국의 부동산에 빗대어 겁주는 사람

부동산 가격이 조금이라도 하락하면 곧바로 등장하는 것이 일본의 부동산이 대폭락을 거론한다.
1992년부터 13년동안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빠진 것이다.

이런 얘기는 부동산투자도 하기 전에 초보를 겁먹게 한다.

나도 책을 읽으며 ‘내가 부동산 투자를 하고 폭락이 오면 어쩌지’하며 실전에 임하기 전에 겁부터 먹고

걱정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미국시장이 난리다.

예전엔 일본 때문에 지금은 미국 때문에 부동산투자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젠 이런 잡소리에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소유한 부동산 20개 모두가 폭락한다고 해도 이런 말 하는 자보다 부자일 것이다.

전체시장의 큰 흐름을 아예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비관론에 대해선 더운 여름저녁에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가슴에 품지 말고 잊어야 한다.

(링에도 올라서기 전에 링에서 죽음사람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링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모든 애널리스트와 저자가 틀리다는 말이 아니고 투자는 간단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약간 오버했음,,!!^^

(강원도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지구온난화와 야생 맷돼지와 고라니 수의 증가
또 여름에 발생하는 태풍과 장마를 감안하여 내년 수박농사 전망을 해보고
농사의 손익분기점은 수박 몇 개를 출하했을 때이며 독신가구가 늘어나는 것과 수박판매량의 변화를 감안하여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예상하고 농사를 지을 것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미친놈이란 소릴 듣고 시원하게 귀싸대기 한 대 맞을 것이다. )
  

열심히 살다보면 운도 따른다,,,!!

사람에게 운(?)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보다.
정말 그런가 보다.

내 인생에서 운은 사람과의 인연이었다.
나보다 앞선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이었다.

소중한 만남으로 인해 나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고 부자로 가는 샛길을 통해 투자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열심히 사는 그러한 모습이 그 분들 눈에 좋게 비쳐졌기에 운도 따르게 되고 인연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물론 나를 알게 된 분들에게도 내가 많은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세상엔 드러나지 않은 고수들도 많다.
그리고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고수의 실력이 비교가 안 될 만큼 월등했다.
적어도 부동산투자와 경매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경매나 부동산에서 고수는 오랫동안 투자를 했던 사람이 아니다.

고수의 기준은 어떠한 물건을 처리했느냐의 차이이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보면 되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 부동산과 경매투자를 할 때 혼자였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좋은 인연을 꾸준히 만날 수 있었고 한번 만남이 있는 인연은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공인중개사, 법원직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직원, 공사업자, 투자자, 브로커등 모두가 소중한 나의 인연이다.

그러면서 내가 부동산을 볼 수 있는 안목과 실력도 향상이 되었다.

지금도 이러한 나의 인맥은 나의 큰 재산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실력을 쌓기 위해 단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부러 고수를 찾아 다녔던 적은 없었다.
타인을 만났을 때 제일먼저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렇게 사람을 대했다.

여러 고수들과 함께 투자를 하고 법률사무소에 지인의 추천으로 경매전담팀을 맡게 되었고,
그 곳에서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게 되었다.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경매는 민사집행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활용을 해야만 돈이 보이고 어떤 상황이든 해결할 수 있는 처방전이 나오는 것이다.


의뢰인 대부분 낙찰을 받고 해결이 힘들어서 찾아오는 것이 변호사사무실이다.
어쩔 수 없이 복잡하고 힘든 물건을 접해야 했다.

60억이 넘게 유치권 신고가 된 사우나, 지분, 지상권, 토지, 상가, 공장, 모텔등 만약 홀로 경매를 했더라면 몇 년이 걸려도 경험하지 못할 엄청난 양의 경매물건 처리를 법률사무소에 재직했기에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 또한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처음에 경매를 할 때 경매물건검색을 하다가 위험하고 힘든 것이라 여기고 스쳐 지나갔던 물건도

이젠 기회로 보이게 되었고 남들보다 경쟁이 덜 한 물건을 소리없이 낙찰받아 조용한 게임을 펼칠 수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은 것이다.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

몇 년 전만해도 나에겐 ‘경제적 자유’란 단어는 꿈만 같은 단어였다.
(이런 책 제목과 유사한 책을 읽었어도 나에겐 현실감이 없었다.)

솔직히 지금 내가 보유한 20억이 조금 넘는 자산이 부자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는 이젠 단지 급여를 받기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지급받는 월세로 의식주와 나의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정도가 경제적 자유의 문턱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32세에 32평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내가 1억2천만원의 투자금으로 짧은 3년의 기간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으므로
앞으로 30억, 40억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투자부분에서는 ‘~ing'이다.


투자를 처음 시작할 땐 돈을 버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서면 그 때부터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내 인생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시간을,,,

돈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처음 종자돈을 모으는 과정이 제일 힘이 들지만 그 다음 투자에 정통하게 되면 그 속도는 엄청나다.

요즘 빌라 몇 개 낙찰 받은 아줌마와 아가씨도 경매 책을 내 놓는 세상이니 경매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처음 경매와 투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텐인텐의 전문가님 글을 읽고나서
동기부여를 받고 공부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편의 글이 내 인생을 바꾸진 못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되는 큰 동기부여를 주었다.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부자대열에 서 있는 나보다 앞선 젊은 부자를 보았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높고 험악한 지형의 산을 야간등반할 때 나보다 앞선 사람의 후레쉬 불빛이 보이면
길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사라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고 열심히 걷다보면 나보다 앞선 사람이 서있던 곳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은 한 번의 투자로 당신의 몇 년치 연봉을 벌 수 있다.


솔직히 말한다면 대학졸업이 예정된 졸업생들이 공무원시험 준비나 기타 취업준비보다

부동산과 경매공부, 경제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낫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준비생들도 자신의 좁은 시야를 좀더 넓혀 단지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10년 이상 큰 인생의 그림을 그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직장과 기회가 보일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성공은 없다,,!!

‘행복과 성공’ 그것은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투자를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월급만으로 그려진 쳇바퀴 인생살이를 택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가는 길이 항상 올바른 길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부족한 글이지만 많은 분들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끝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좀더 상세하게 투자에 관한 글을 적으려 했지만 양이 너무 많아 줄일 수 밖에 없었던 점 이해바랍니다.



* i-구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2-27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