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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숙 사원/인사지원그룹/삼성SDS   게시일  2003-03-04 16:35
대상등급  3:임원진(상무,이사,고문,감사) ~ 9:협력사 임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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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도매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아침 일찍까지 모든 소매점에 닭을 배달해야 했기에  
낮에 주무시고 저녁 9시 정도에 일을 나가 아침 아홉 시가 되어야 들어오곤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아버지 일을 같이 따라간 적이 있다.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왔다. 폭풍우였던 기억이다.  
닭들을 싣고 시골 비포장길을 나오다가 움푹 패인 곳에 차가 흔들려  
뒤에 실려 있던 닭 통들이 떨어졌다.  

비 오는 그 깜깜한 밤에  아버지는 "춥다 차 안에 있어"하고는 트럭 뒤로 가셨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나 걱정돼 창문을 열고 뒤를 쳐다보았다.  
비가 퍼붓는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는 둘이 있어야 잡아 주고  
당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힘들게 하고 계셨다.  

그때 아버지의 모습!
닭장사 한다고 부끄러워했던 내 어린 마음이 한없이 철없어 보였고,  
낮에 주무시다가 형과 내가 싸우는 소리에 피곤한 잠을 깨셔서는 화내시던  
아버지를 미워했던 생각이 나 너무 부끄러웠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비 들어간다 문 닫아라" 하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셨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커다란 사랑이 되어  
선명한 사진 한 장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미국에 유학 와 공부하는 지금, 전화를 드리면 종종 아버지는
"내가 죽어도 니 등록금은 꼭 붙이도록 해놨다"시며 몇 번이나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목이 메어와 난 감사하다는 말만 얼른 하고는 전화를 끊고 만다.  

미국에 온 지 두 달째부터 슈퍼에서, 세탁소에서, 식당에서,
학교 컴퓨터 랩실에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런 내게 아버지는 아비가 모자라 니가 고생한다면며 늘 미안해하신다.  
좀체 보이지 않던 눈물까지 가끔 수화기 너머로 비추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여기서 한 시간 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아버지이시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해 본 부산 사나이 우리 아버지,  
그건 사랑한다는 말이 따로 필요없기 때문이 아닐까?  

                     『 좋은생각 김영진 님 인용 / 부산 동래구 』